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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소개

남산 북쪽 기슭 한옥마을이 들어선 필동(筆洞)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흐르는 계곡과 천우각이 있어서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이름 있던 곳입니다. 또한 청학이 노닐었다고 하여 청학동으로도 불렸습니다. 청학동은 신선이 사는 곳으로 불릴만큼 경관이 아름다워 한양에서 가장 경치 좋은 삼청동(三淸洞), 인왕동(仁王洞), 쌍계동(雙溪洞), 백운동(白雲洞)과 더불어 한양 5동(漢陽五洞)으로 손꼽히던 곳입니다.


남산골 제모습찾기의 일환으로 이곳의 옛 정취를 되살려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하여 골짜기를 만들고 물을 흐르게 하였으며, 정자를 짓고, 나무를 심어 전통정원을 조성하였습니다. 7,934m² 대지 위에 서울의 사대가로부터 일반평민의 집에 이르기까지 한옥 다섯 채를 옮겨놓았습니다. 이들 한옥들에는 집의 규모와 살았던 사람의 신분에 걸맞은 가구들을 예스럽게 배치하여 선조들의 생활모습을 직접 보고 알 수 있게 하였습니다.


삼각동 도편수(都片手) 이승업(李承業) 가옥

청계천 부근 중구 삼각동 36-2번지, 이전·복원

 

이 가옥은 조선말기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에 의하여 경복궁이 중건될 때 도편수(목수의 우두머리)였던 이승업이 1860년대 지은 집으로 중구 삼각동 32-6번지에 있던 것을 이곳 남산골한옥마을에 이전, 복원하였습니다. 대문간채와 행랑채가 안채와 사랑채를 둘러싸고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만 남아 있습니다.

안채는 '丁(정)'자형이고 사랑채는 'ᄂ'자형의 평면입니다. 안채에서 부엌과 안방 쪽은 반오량(半五樑)으로 꾸며 전후면(前後面)의 지붕길이를 다르게 꾸민 것은 특색이 있는 구조입니다. 대청과 건넌방 쪽은 일고주오량가(一高柱五樑架)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삼청동 오위장(五衛將) 김춘영(金春營) 가옥

종로구 삼청동 125-1번지, 이전·복원

 

이 가옥은 조선말기 오위장을 지낸 김춘영이 1890년대 지은 집입니다. 종로구 삼청동 125-1번지에 있던 것을 이전, 복원하였습니다. 'ᄃ'자형 안채에 'ᅳ'자형 사랑채를 연결시켜 ('ᄃ') 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안채 대청은 오량가(五樑架)이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삼량가(三樑架) 입니다.

판대공(板臺工)을 사용하고 홑처마로 꾸미는 등 전체적으로 평민주택의 양식을 보이고 있지만, 안방의 뒤쪽 벽, 즉 길가에 면한 부분에 사괴석(四塊石)과 전돌(塼石)을 사용하여 화방벽(火防壁)을 쌓아 집의 격조를 더 높인 것이 특징입니다.


관훈동 민씨(閔氏) 가옥

종로구 관훈동 30-1번지, 이전·복원

 

이 집은 민영휘(閔泳徽,1852~1935)의 저택 가운데 일부였습니다. 그는 관훈동 일대 너른 땅에다 집을 여러채 짓고 일가붙이와 함께 살았는데, 옛 터의 위치는 종로구 관훈동 30-1번지였습니다. 원래 집터에는 안채와 사랑채 외에도 별당채와 대문간채, 행랑채 같은 집채가 있었다고 전하나 나중에 소유자가 바뀌면서 안채와 여기에 연결된 중문간채만 남기고 모두 헐려졌습니다. 1998년 남아있던 안채를 옮겨 지으면서 철거되었던 건넌 방 쪽을 되살렸고, 사랑채와 별당채를 새로 지었습니다. 전체 배치는 사랑채 뒤로 안채와 별당채를 구성하였으며 담과 문으로 적절하게 공간을 나눴습니다.

보통 서울지방 안채는 안방 앞쪽에 부엌을 둬서 ‘ᄀ자형’으로 꺾어 배치하는 편인데, 이 집은 드물게 부엌과 안방을 나란하게 놓았습니다. 이 밖에도 고주 두 개를 세워 짠 넓고 큰 목조구조와 여섯 칸에 달하는 부엌의 규모, 그리고 마루 밑에 뚫려있는 벽돌 통기구 등은 당시 일반 가옥과 다른 최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기동 해풍부원군(海豊府院君) 윤택영(尹澤榮) 재실

동대문구 제기동 224번지, 이전·복원

 

이 가옥은 조선 제27대 순종의 장인 해풍부원군 윤택영이 그의 딸이 동궁(東宮)의 계비로 책봉(1906)되어 창덕궁에 들어갈 때 지은 집으로 전합니다. 제기동 224번지에 있던 것을 이전, 복원하였습니다. 이 집의 평면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元(원)'자 모양인데 제일 윗 터에 사당을 배치하고 그 아래 터에는 몸채를 두었습니다.

사당은 1960년 4·19혁명 때 불에 타서 없어졌던 것을 복원하였으며, 사당 앞에 두 단의 석축(石築)을 쌓아 화계(花階)를 구성하였습니다. 몸채는 일고주오량가(一高柱五樑架)이고 앞채는 삼량가(三樑架)입니다. 장대석(長臺石) 기단(基壇)과 방형초석(方形礎石), 그리고 일부에는 굴도리를 사용하여 집의 격식(格式)을 높였습니다.


옥인동 윤씨(尹氏) 가옥

종로구 옥인동 47-133번지, 복원

 

이 집은 대략 1910년대에 지었다고 알려진 옥인동 47-133번지 가옥을 그대로 본떠서 새로 지은 것입니다. 당시 옥인동 47번지 일대 너른 땅은 순종의 황후인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1894~1966)의 큰아버지 윤덕영(1873~1940) 소유였습니다. 그는 이 집 근방에 20여 채에 달하는 집을 짓고 일가붙이와 모여 살았는데, 그 가운데 서양식으로 지은 사위집(옥인동 박노수 가옥,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1호)과 윤덕영의 측실이 거처했던 옥인동 47-133번지 가옥만 남아 전합니다.

1998년에 남산골한옥마을을 조성하면서 이 집을 옮겨 지으려 시도했으나 부재가 너무 낡고 손상이 심해 신축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밀하게 고증하여 지었고, 원래 터가 진 땅의 높낮이 차이까지 일부나마 되살려 본래 분위기를 재현하였습니다. 매우 규모가 큰 ‘ᄆ자형’ 안채에 사랑채 구실을 하는 마루방과 대문간이 더해져 전체 배치는 'ᄆ자형'을 이루지만 아무래도 안채를 위주로 짠 공감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간소하게 민도리집을 채택하였으나 안채 앞쪽은 일반 민가에서는 보기 드물게 기둥머리에 익공(翼工)을 치장하는 등 건축구조와 세부기법은 당시 최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