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 6호  남산 AROUND

만질 수 있는 음악, 돌아온 감성 레코드

최경진_프리랜서 방송작가
발행일2021.05.11

레코드의 자작거리는 소리, 그 따뜻한 감성을 찾아 최근 을지로, 충무로 일대를 찾는 발걸음들이 있다. 특히 충무로가 시작되는 명동은 일제 강점기부터 레코드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많았고, 이와 함께 음반 가게들도 자리 잡았더랬다. 그 터줏대감 격이었던 대한음악사는 제자리를 지키지 못했지만, 여전히 그때의 그곳에서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는 모습의 변화를 목도해온 레코드숍이 있다. 또한 그때의 레코드 감성을 살리면서 ‘힙’한 감각으로 새롭게 자리한 공간까지도 함께 찾아나서 봤다.


“나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음악이 좋아요. 엘피판을 들으려면 제법 번거로운 과정이 있죠. 편리성만 따지자면 시디가 최고일 거예요. 엘피판은 반드시 손으로 들고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흠집이 나 판이 튀기도 해요. 엘피판은 세심하게 신경 써주어야 깊고 그윽한 음질로 보답하죠. 우리 삶에 음악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요. 삶을 축복해주는 음악을 들으려면 기꺼이 그 정도 수고쯤은 감수해야죠.” - 소설 <뮤직숍>


레코드의 성지로, 고고!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레코드 시장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한때 국내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레코드 공장이 2017년 다시 문을 열었고,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었던 작년에는 26년 만에 다시 문을 연 레코드 제작사도 있다. 이소라, 방탄소년단, 백예린 등 많은 국내 가수들이 레코드판을 제작했고 인기몰이 중이다. 7,80년대 감성이 재유행하는 ‘뉴트로’ 열풍 때문인지, 집에서 즐길 거리를 찾는 ‘집콕’ 문화 때문인지 레코드는 확실히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시대를 역주행해 다시 대중에게 돌아온 레코드. 과연 그 매력은 무엇일까? 레코드를 즐기고 소비하는 이들에게 성지로 불리는 을지로 일대, 대표적인 레코드숍 두 곳을 탐방해봤다.
특히 일제강점기 명동을 중심으로 일대에 수많은 ‘다방’이 존재했다. 다방은 차를 마시며 당시 신문물인 레코드를 통해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일본인 대상의 다방 ‘후타미’와 ‘금강산’이 명동에 생기고 이어 한국인이 최초로 개업한 다방 ‘카카듀’, 시인 이상의 다방 ‘제비’는 종로에 생기는 등 당시 중심지였던 명동, 종로 일대에 다방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해방 후 첫 음악다방으로 꼽히는 ‘은하수다방’과 6,70년대 400여 개의 좌석과 2,000여 장의 음반을 보유했다는 ‘심지다방’ 역시 명동에 있었다. 이 다방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레코드를 접했고 자연스럽게 이 일대가 레코드의 성지가 되었다. 그 후 1960-80년대에는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빽판’이라 불리는 불법복제 레코드가 성행했는데, 이 빽판을 통해 수많은 팝송이 유입되고 국내 금지곡들도 구매가 가능했다. 때문에 레코드를 찾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 일대를 찾았으며 레코드 성지의 역사를 이어갔다.

1972년 서울 명동의 심지다방. 400석 규모에 2,000장의 음반을 갖추고 동굴을 연상케 하는 전위적인 실내장식으로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었다. 김형찬 제공, 출처: 국제신문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음악 시장은 짧은 시간에 큰 변화를 겪게 된다. 1980년대엔 카세트테이프, 1990년대엔 CD가 등장했고 2000년대 이후로는 MP3, 스트리밍으로 대부분의 음악을 듣게 됐다. 결국 그 많던 음반 가게들이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기 시작했고 명동, 종로, 을지로 일대의 가게들도 사라진다. 1962년 명동에 세워져 명물이 되었던 ‘대한음악사’ 역시 몇 년 전 본점인 명동을 폐쇄하고 분점이었던 서초지점만 남아있다. 전성기 때의 흔적이 짙게 남은 탓에 이 일대는 한동안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했다. 그러나 그 흔적 덕분에 최근 레트로 문화를 즐기는 젊은 세대가 즐겨 찾기 시작했고, 더불어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거나 재현한 카페나 식당은 물론 당시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레코드 전문 가게들도 하나둘 생겨났다. 그렇게 다시 ‘힙’한 동네가 된 이곳에 40년 넘게 꿋꿋이 자리 잡으며 대표적인 레코드 성지가 된 음악 매장이 있다. 바로 ‘서울레코드’다.

Since 1976, 서울레코드

서울레코드는 단 한 번도 자리를 옮긴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세월이 흐르며 쌓인 연륜 속에 다양한 음악 매체를 담고 있다. 레코드는 물론 CD, 카세트테이프까지 모두 혼재되어 있다. 심지어 카세트테이프 이전에 잠시 생산됐다는 8트랙 테이프도 구경할 수 있다. 장르 역시 옛 감성과 요즘의 감성이 혼재돼 있는데, 클래식, 재즈, 국악, 트로트, OST, 로큰롤, 올드 팝, 아이돌 음악 등 웬만한 장르는 다 갖추고 있다.
서울레코드 내 청음공간인 빨간 전화박스 ⓒ 최경진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게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빨간 전화박스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CD 청음이 가능한 헤드폰과 뮤직비디오를 영상과 함께 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 헤드폰이 마련돼 있다. 최근 채널A ‘하트시그널’에서 주인공들이 이곳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이 소개됐는데 그 이후로 젊은 연인들이 SNS에 올리기 위해 자주 찾는 명소가 됐단다. 그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이 옆에 위치한 레코드들이다. 
 

“자작자작- 하는 소리를 듣고는 ‘이 소리지!’ 하는데 한 명만 그런 게 아니에요, 그걸 젊은 층에서는 따뜻하다고 하더라고요.” 

 

젊은 층이 느끼는 레코드의 매력은 ‘자작자작’거리는 따뜻한 소리다. 서울레코드 황승식 사장은 원음에 가까운 소리가 개발돼 기술의 정점에 도달한 요즘, 다른 소리도 듣고 싶은 욕망이 레코드 유행의 또 다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노래 자체에 대한 매력뿐만 아니라 듣는 방식에도 다양한 매력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 이거는 이런 느낌에, 저거는 저런 느낌에. 

서울레코드 내부 ⓒ 최경진

제일 잘나가는 음반은 최근 레코드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서인지 입문용이라고 할 수 있는 비틀즈 음반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재즈 장르가 다른 매장보다 잘나가는 편이라고. 재즈 중에서는 재즈의 뿌리에 가까운 엘라 피츠제럴드와 루이 암스트롱이 함께한 음반이 꾸준히 인기다. 사장님에게 부탁하면 대부분의 레코드를 청음 해볼 수 있는데 인기 있다는 엘라 피츠제럴드와 루이 암스트롱의 ‘Can't We Be Friends?’를 감상했다. 약간의 자작거림이 노이즈가 아닌 하나의 감성으로 느껴지는 게 신기했다. 많은 이들이 느꼈다는 따뜻한 소리가 이런 것일까.

서울레코드 내부, 한 손님이 LP판을 살펴보고 있다 ⓒ 최경진

세월의 흐름 속에 서울레코드 역시 몇 번 장사를 접으려고 했지만 무슨 운명인지 그때마다 직원으로 일했던 사람들이 가게를 이어받았다. 4대째인 현 사장 황승수 씨 역시 몇 년 정도 직원으로 일하다가 2013년 당시 사장님에게 가게를 이어받은 케이스다. 그 사이 신입사원 때부터 들르던 단골은 70대 노인이 되었고, 교복을 입고 오빠들의 앨범을 찾던 소녀팬은 엄마가 되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모여 놀았던 비디오 가게처럼 나이 들어서도 그 시절같이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게 목표라는 황승수 사장. 나이 지긋한 단골들에게도 레트로 감성을 느끼고 싶은 젊은이들에게도 이 공간을 추천하는 이유다. 

서울레코드 인스타그램: @ seoulrecord 
주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 154(종로 3가)

카페와 레코드숍이 따로 또 같이

클리크 레코드(Clique Records)는 2016년 문을 연 을지로의 ‘힙’한 감성이 그대로 녹아 있는 레코드숍이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찾기 어렵고 3층으로 올라가는 내내 이게 맞나 싶다. 그렇게 문을 열면 또다시 양옆의 두 개의 문을 만난다. 오른쪽 입구는 클리크 레코드, 왼쪽 입구는 카페 겸 바인 디엣지. 사실 입구만 두 개일 뿐 결국 한 공간이다. 

좌로부터 클리크 레코드, 카페 겸 바 디엣지 ⓒ 최경진
들어가면 진열된 레코드와 청음 할 수 있는 두 개의 턴테이블이 눈에 띈다. 진열된 레코드들은 사장님이 전 세계에서 발품을 팔아 수입해오는 언더그라운드 댄스 장르의 음반들이다. 대부분이 중고로 장르는 레게, 하우스, 테크노, 일렉트로닉 등 다양하다. 그럼에도 장르나 연도별로 레코드 정리가 잘 되어 있고 레코드마다 간단한 설명이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어 원하는 느낌의 음악을 찾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저렴한 가격에 미지의 땅에서 보물을 찾듯 ‘디깅(Digging)’하기 좋은 장소다.
클리크 레코드 내 청음 가능한 턴테이블 ⓒ 최경진

청음용 턴테이블은 자유롭게 사용한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들은 직원이 도움을 준다. 버튼을 돌려 전원을 켠 다음, 33RPM과 45RPM 중 레코드에 맞는 RPM(분당 디스크 회전 속도)을 선택한다. RPM은 대부분 레코드에 커버에 적혀있는데, 만약 없다면 33RPM이 기본이라고 한다. 속도를 선택한 뒤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레코드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위에 바늘을 올리면 이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고른 음악은 평소 신나는 노래를 좋아하는 만큼 디스코. 미국의 R&B 가수 올리버 치트햄의 ‘S.O.S’를 리믹스한 버전이었다. 무려 1986년에 나온 레코드로 나와 동갑이다. 돌아가는 레코드에 바늘을 올렸지만 약간의 침묵. 바로 음악이 나오는 게 익숙하다 보니 조금 긴장이 됐다. ‘왜 안 나오지?’하는 순간 흘러나온 음악. 몹시 내 취향이라 입이 귀에 걸려버렸다.

클리크 레코드 내부 ⓒ 최경진

음악을 들으며 생각해봤다. 레코드의 인기 이유를. 검색하고 클릭하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레코드는 좀 수고스럽다. 구하기 위해 좀 더 발품을 팔고 듣기 위해 닦고 관리해줘야 한다. 하지만 애정을 준만큼 그윽한 소리로 보답해준다. 그 보람을 느껴본 사람에게 레코드는 진정한 ‘음악의 맛’이 되지 않을까. 그곳에서 나도 새로운 맛을 보았다. 

클리크 레코드(CLIQUE RECORDS) 인스타그램: @ clique_records
주소: 서울시 중구 을지로 12길 8(을지로 3가)

최경진_프리랜서 방송작가
2011년부터 방송작가 일을 시작했다. SBS ‘생활경제’, tvN ‘대학토론배틀’, MBC ‘생방송 오늘아침’ 등을 거쳐 지금도 사람들의 삶과 인생이 녹아든 현장을 포착하고 방송에 담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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