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 7호  남산 STORY

유랑예인(극)단의 애환과 흥망성쇠

유민영_연극평론가, 문학박사
발행일2021.07.06

‘집도 없이, 법도 없이’라는 영화 제목이 떠오르는 삶, 유랑예인단의 삶이 바로 그런 것이리라. 남사당패를 비롯해 솟대쟁이패, 걸립패, 초라니패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던 이들 유랑예인단은 조선 후기 판소리와 함께 대중예술의 번성기를 구가하다가, 근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변모했고 사라져갔으며 살아남았을까. 뜻밖에 사물놀이에서도 그 우여곡절을 알 수 있다니 더욱 궁금해진다.

유랑예인단의 기원이 불교와 관련 있다?

유랑극단 대신 유랑예인단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지난 시절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정한 거처 없이 하늘을 지붕 삼아 떠돌아다닌 이들의 예능이 좁은 의미의 연극이 아니라, 소위 가무백희(歌舞百戱)라 할 여러 가지 기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서양의 유랑예인단의 시발은 많이 달랐다. 즉 서양의 유랑예인단이 고대 인도의 집시들이 서양으로 흘러 다니면서 먹고살기 위해 가무와 인형극을 했다고 한다면 한국에서는 조선 초 불교와 깊은 관련을 갖고 있는 점에서 색다르다. 그리고 기원 면에서도 서양의 경우 아주 오래전부터 유랑예인단이 존재했지만, 이 땅에서는 민속학자들에 따라 신라기원설(이능화 李能和)과 고려기원설(오에노 마사후사 大江匡房), 그리고 조선조 임진란 직후기원설(송석하 宋錫夏) 등이 전한다.
<감로도> 일부 ⓒ 국립중앙박물관. 감로도는 중생들에게 감로(甘露) 즉, 이슬과 같은 법문을 베풀어 해탈시키는 의식의 모습을 그린 불화다. 이는 억울하게 죽은 모든 영혼이 부처의 가르침을 깨달아 다음 생에서는 좋은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목적으로 많이 제작되었다. 위 장면은 감로도에 묘사된 유랑예인의 연희 장면이다.

이들 중 조선조 임진란기원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지만 유랑예인단이 꼭두각시인형극을 하는 것이라든가 고려가요 <청산별곡>에 나오는 시구 “사슴이 장대에 올라 해금을 혀거늘 드로라‘ 등을 보면 고려기원설도 없지 않다. 조선조 임진란기원설을 제시한 송석하는 당시 연예인들의 명칭들, 이를테면 연예단의 핵심멤버들이라 할 사당(社堂)과 거사(居士)에 근거하여 그 시원을 풀은 바 있다. 당초 사당이란 술자리나 잔칫집에서 가무로 흥을 돋우는 기생 역으로서 매음도 했다. 그런 사당의 매니저 겸 남편이 바로 거사다. 

주지하다시피 승려가 못된 거사는 불자로서 사찰에 거주하며 잡일을 돕고 자신의 재산과 수시로 이익이 생기면 절에 시주했으며, 때때로 자신의 내처인 사당으로 하여금 젊은 승려들에게 몸을 허락케 하는 등 상부상조하는 관계였다. 그러다가 불교가 탄압받고 또 임진란을 겪으면서 사회경제가 어려워지자 각 사찰도 운영이 힘들어진 것이다. 물론 사찰에는 평소 불자들이 시주를 바치지만, 절의 신축이나 개보수 등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 다반사로 생겨난다. 거기에는 거사들이 몸으로 때울 수 없는 재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생각해낸 것이 다름 아닌 연예 단체를 조직하여 돈을 벌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유랑예인의 모습이 16세기 이후 고찰들의 감로탱에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도 사찰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청룡사 감로탱 ⓒ 국가문화유산포털

조선 대중예술의 번성기를 관통한 예인단

그 조직을 보면 가부장적 시대에 맞게 모갑(某甲)이라는 강력한 통솔자 겸 매니저 밑에 예능 전문의 사당들이 모였는데, 그들의 남편인 거사들은 단원들이 생활하고 이동하면서 생기는 잡사 등을 뒷바라지했다. 대체로 10여 명 내외로 구성된 사당패들이 돈을 벌려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볼거리가 있어야 했다. 사당들은 평소 술자리나 회갑 잔치 등에서 각종 춤과 노래로 흥을 돋워왔기 때문에 기본적인 레퍼토리를 갖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서는 관중을 오랜 시간 즐겁게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발해야 했고, 주로 전 시대부터 연행되어 왔던 산악백희(散樂百戱) 안에 들어 있는 풍물, 줄타기, 땅재주, 아크로바트, 인형극, 마임 등을 변형시켜서 재미있게 꾸며갔던 것이다.

남사당놀이, 인형극 박첨지놀음 ⓒ 국가문화유산포털

알다시피 당시만 하더라도 도시가 발달하지 않은 부락 중심의 농경사회였으므로, 극장이 없어서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아다니면서 포장 치고 야외공연을 해야 했다. 당초 사찰에 재정적 도움을 주기 위해서 시작한 사당패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생활수단으로 삼아 직업 유랑예인단으로 정착해갔다. 평소 예능에 목마른 대중은 어쩌다 들어오는 사당패의 가무백희에 열광하면서 사당패와 유사하면서도 조금 다른 예인단들이 경기 안성, 충남 당진, 경남 진주, 전남 강진, 황해도 장연, 평북 평양 등등 각 지역을 본거지 삼아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산풍속도첩 <솟대쟁이패>, 19세기 말, 무명에 채색, 28.5×35.0㎝ ⓒ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유랑연예인 집단인 솟대쟁이들이 곡예하는 모습을 그린 풍속도이다. 그림에서처럼 놀이판에 큰 솟대를 세우고 솟대쟁이가 거꾸로 매달려서 땅에 서 있는 광대와 재담을 나눈다. 그 옆에서는 죽방울을 끈으로 튕기거나 공을 던져 받는 재주를 부리고 있다. 악대들이 북과 꽹과리로 흥을 돋운다.

가령 생성연대가 불명확한 남녀 혼성 또는 남성 중심의 연예단체들이라 할 솟대쟁이패를 비롯하여 걸립패, 남사당패, 대광대패, 풍물패, 대광대패, 초라니패, 풍각쟁이패, 굿중패, 그리고 날탕패 등등 조금씩 성격이 다른 10종 이상의 패거리들이 20세기 초까지 부침했다. 물론 가장 많은 유랑예인단들이 등장한 시기는 판소리가 대중예술로서 전성기를 이루던 1800년대를 전후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왜냐하면 그 시기에 탁월한 예술이론가 신재효가 판소리를 공연예술로 업그레이드한 때였던 데다가 대중예술이 크게 번창했던 시절이어서 많은 연예인들이 자극받아 능동적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애환을 어루만지는 힘

한편 사당패와 겨룰 만큼 인기를 끌었던 솟대쟁이패는 조선 중기에 진주 지방을 근거지로 삼아 출범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침 진주 지방은 오광대탈춤이 상존했을 뿐만 기생조합 같은 기녀양성소까지 있어서 인적 인프라가 넉넉하여 예인단 구성이 손쉬웠다고 말할 수가 있다. 이 단체는 마을 수호신의 상징이라 할 솟대를 한가운데 세워놓고 풍물을 비롯하여 솟대타기, 죽방울 돌리기, 탈춤, 가무, 땅재주, 줄타기, 굿놀이, 곡예, 재담 등 각종 기예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그들의 레퍼토리는 가무체기(歌舞體技)가 주를 이루었고 식자들에게는 하찮게 보일지 모르지만, 해학과 풍자 속에는 당시 민중들의 사회관, 인생관이 함축되어 있었다.

기산의 풍속화 <굿중패모양>, 19세기 말 ⓒ 국립민속박물관.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소장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의 풍속화 모사복원품으로, 굿중패들이 기예를 펼치며 걸립하는 모습을 그렸다. 고깔을 쓴 승려 3명과 무동을 태운 장정 1명으로 구성되었고 굿패들은 꽹과리와 북을 치고 있다.

따라서 여러 형태의 유랑예인단들은 모두가 비슷비슷한 레퍼토리들을 갖고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전제군주시대의 억눌림과 가난, 차별,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과 불화하여 영육으로 고통받고 있던 민중에게 놀이로서 울화와 시름을 달래주고 즐거움을 선사함으로써 삶에 의욕을 돋궈주었던 것이다. 그 점에서 전 시대에도 정재(呈才)와 같은 궁중예술도 있었지만 유랑단체들의 영향력이 단연 압도적이었다. 이는 마치 오늘날 코로나로 고통받고 있는 대중에게 트로트 가수들이 한몫을 하고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유교를 숭상한 조선사회가 의외로 사당들의 매음행위에 눈 감음으로써, 19세기 초에 남사당패가 등장하여 유랑예인단들의 리더 역을 그들에게 넘길 때까지 수백 년 동안이나 사당패가 존속할 수가 있었다는 점이다. 반면에 일본의 경우를 보면 무속에서 출발하여 여성 중심의 가부키(歌舞伎)극으로 번성했지만, 여배우들이 국가로부터 매음행위에 따라 출연금지 됨으로써 남성배우들이 오늘날까지 온나카다(女形俳優 - 가부키에서 여성을 연기하는 남성배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고급 매춘부 역할로 분장한 나카무라 시칸 6세와 사와무라 다노스케 3세. 사와무라가 가부키 무대에 첫 데뷔한 1860년에 도요쿠니가 인쇄하였다. 출처: 위키피디아

남사당패, 독보적 예인단으로 군림하다

그리고 유랑예인단들의 인적 조달은 세습과 기생조합 출신들, 운명적으로 끌려들어간 사람들, 그리고 고아들을 데려다가 훈련시켜서 쓰는 방법을 택했다. 물론 이들은 모두가 일반 광대보다도 못한 최하층민의 천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전 시대에 민중에게 정서적으로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이 여류시인 노천명(盧天命)은 ‘남사당’이란 시에서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를 따아내린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졸아치들이/ 날나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향단이가 된다/ 이리하야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어/ 람프불을 돋운 포장 속에선/ 내 남성이 十分 굴욕된다/ 산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 은반지를 사주고 싶은 고운 처녀도 있었건만/ 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 처녀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소도구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딸기의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나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고 유랑예인들의 행태와 애환을 읊은 바 있다.

일제 강점기의 남사당 놀이 ⓒ 국립민속박물관

노천명이 유랑예인단들 중 굳이 남사당패를 콕 집어 시로 쓴 것은 이들을 독보적인 패거리로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사당패는 등장하자마자 조직 면에서나 예능, 운용 등의 면에서 단연 뛰어났다. 즉 이들은 꼭두쇠라는 리더 밑에 화극, 뜬쇠, 삐리, 가열 등 4,50명으로 탄탄한 직업단체를 만들어 레퍼토리로서도 풍물을 시작으로 하여 접시돌리기, 땅재주, 줄타기, 탈놀이, 그리고 꼭두각시인형극 등 짜임새 있는 6종의 체기(體技)와 서사를 조화시켜서 관중을 사로잡아 유랑예인단의 최고봉으로 군림했다.

근대를 거친 유랑예인단의 쇠락과 갈림길

그러나 유랑예인단들도 근대화의 거대 물결 속에서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 첫 번째 장애 상대가 다름 아닌 20세기 초에 일본을 거쳐 들어온 서구의 서커스와 신파극이었다. 이들도 일종의 유랑예인단이었지만 기예 면에서 조금은 근대성을 띤 것이어서 전통적인 유랑예인단들의 놀이를 촌스럽게 보이게 했던 것이다. 그보다도 유랑예인단들을 급격히 몰락시킨 것은 우리 고유 정서의 말살정책을 쓴 일본제국주의자였다. 그로부터 유랑예인단들 대부분이 소멸했고, 한두 남사당패가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다가 6.25 전쟁 때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남사당 놀이 중 <살판> ⓒ 서울대학교박물관/Seoul National University Museum. 일제 강점기에 남사당이 가설무대에서 살판을 공연하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다. 살판은 땅재주 묘기로 ‘잘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 판’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다행히 전통회복을 추구하던 몇몇 문화인들의 노력과 정부의 배려로 1964년 남사당패를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존속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78년 2월 소극장 공간사랑이 문을 열면서 우연히(?) 젊은 국악인들이 모여 농악 중 타악기 네 가지, 즉 꽹과리, 징, 북, 장구로 합주를 하여 관중의 호응을 얻으면서 소위 ‘사물놀이’라는 새롭게 변형된 유랑예인단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들이 자국인은 물론이고 세계인들에게까지 크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은 아무래도 구름(북), 천둥(꽹과리), 비(장구), 바람(징) 등 자연을 이미지화한 악기가 내는 리듬의 보편성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상과 같이 유랑예인단들은 천수백 년 동안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오늘날까지 한국인들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 것을 넘어 세계에도 우리 고유 문화의 우수성을 전파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다. 

유민영_연극평론가, 문학박사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및 같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연극학과에서 수학하였다.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예술의전당 이사장, 단국대학교 예술대학 학장, 문화예술대학원장 및 석좌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단국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주요 저서로 <한국연극산고>(1978), <한국현대희곡사>(1982), <한국근대연구사>(1996) 등 20여 권이 있으며, <한국연극운동사>(2001)는 일본 후교샤(風響社)에서 번역·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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